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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경험한 간헐적 단식

3~4년 전 간헐적 단식이 한창 유행한 적 있습니다. 저는 TV 속 연예인들을 통해 처음 접하고 하루 두 끼에서 세끼 정도를 굶는 것으로 뭔가 몸을 한 번 정화하는 느낌이 좋아 한 번 시도해 본 적이 있어요. 아침은 평소처럼 간단히 우유 한 잔과 빵을 먹고 점심과 저녁 두 끼를 굶기로 했습니다. 집에 가만있으면 오히려 종일 음식 생각이 날까 봐 가볍게 외출을 해서 오후를 보냈어요. 생수 한 병을 사서 배고픔이 너무 심해지면 조금씩 마시면서 버티려 준비했어요. 살짝 배가 고프긴 했지만 그렇게 허기로 공포스러운 느낌은 아니었기에 이런 식이라면 주기적으로 한 번씩 할 만도 하다고 생각했죠.

 

문제는 다음 날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몸이 영 맥을 못췄습니다. 단순히 배가 고픈 수준이 아니었어요. 몸 전체에서 에너지가 모두 빠져나간 느낌에 손이 벌벌 떨리기까지 했어요. 고작 두 끼 굶었다고 이럴 일인가 싶었어요. 간신히 내 방에서 기어나가 거실 소파에 쓰러지듯 누워 가족에게 SOS를 청했습니다. 단식 후 첫 끼를 밥으로 시작하기가 부담스러워 끓인 밥으로 두 끼를 먹었어요. 몸이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회복되는 데는 하루 이상 걸린 것 같아요. 어쨌든 그 이후로는 절대 굶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단식의 부작용에 대해 주위 사람들에게 기회가 닿을 때마다 알리기도 했어요.

 

나중에야 깨달았지만, 사실 당시 저의 몸은 단식을 할만한 상태가 아니었습니다. 거의 평생을 만성 빈혈상태로 빈혈약을 먹다 안 먹다하던 저는 그땐 약을 먹고 있지 않은 때였는데 빈혈 상태의 몸에 가해진 단식이라 몸이 버티질 못했던 것 같아요. 영양가 있게 잘 먹어야 할 몸을 오히려 굶겼으니 몸은 비상 경보등을 계속 울렸던 거예요. 겨우 두 끼 굶은 것으로 저는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거든요. 

 

▒ 어디까지 굶을 수 있을까?

생애 두 번째 단식 경험은 열흘 쯤 전에 예상치 못하게 찾아왔습니다. 단식을 해야겠다 작정을 한 것은 아니었어요. 그냥 자신이 너무 무력했는데 내 힘으로는 바꿀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자각 이후 멍해져 버렸습니다. 식사 때가 되었지만 딱히 먹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어요. 그냥 굶어보기로 했어요. 여전히 빈혈로 약을 먹고 있기에 조금 위험한 결정이라는 걸 알았지만 딱히 격렬한 활동을 할 일은 없으니 한번 지나 보기로 했어요.

 

그렇게 저녁을 거르고, 다음 날 아침도 그냥 넘긴 후, 점심 때쯤엔 배가 꼬르륵거리기도 하고 잔잔한 몸살 기운도 돌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견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잠깐씩 배가 고프다 괜찮아지다가를 반복했어요. 약을 먹느라 물 한 모금을 마신 것을 빼면 온전한 단식이었습니다. 

 

지난 저녁부터 다음 날 점심까지 굶었으니 이미 두 끼를 굶었던 지난 번 간헐적 단식의 기록은 경신한 셈이죠. 창밖이 환해졌다 슬그머니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지만, 그때까지도 저는 '그냥 살기 위해' 말고, '습관처럼'도 말고, 먹어야 할 이유 한 가지를 생각해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관성대로 살다 보면 그저 어제 같은 오늘을 살뿐이니까요. 어제의 절망이 오늘로 이관될 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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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시간 단식이 남긴 것

이상한 기운을 느낀건 26시간 남짓의 공복 상태로 자다 깨다를 반복하던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선잠을 자다 깼는데 온 몸이 땀 투성이었어요. 얼굴은 마치 세수라도 갓 마친 듯 물기로 흥건했고, 목과 팔다리에도 식은땀이 줄줄 흐르고 있었어요. 일단 땀을 좀 식히려 창문을 열었는데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시원한 바람 한 줄기가 불어왔습니다. 탁하고 갑갑했던 공기가 일순 청량하게 느껴졌는데, 그 순간 단식은 '여기까지'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던 거예요.

 

대충 비 오듯 얼굴에 흐르는 땀을 수건으로 훔치며 주섬주섬 일어나 주방 냉장고에서 두유 한 컵을 따랐습니다. 26시간 만에 처음 맛보는 시원한 두유 한 모금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더라고요. 벌컥벌컥 한 컵을 다 마셨어요. 온몸으로 울음 같은 땀을 내뿜던 몸이 조금씩 진정되는 듯했습니다. 

 

틀어진 몸의 균형이 제자리를 찾는 데엔 이틀 정도가 더 걸린 것 같습니다. 다음 날 아침은 다시 두유 한 컵을 마셨고, 점심부터 두 끼는 죽을 먹었어요. 다시 먹기 시작했어도 빠져나간 에너지가 금방 회복되지는 않아서 하루 정도는 더 누워 컨디션을 회복했습니다. 

 

최장 기간 단식은 몸에 몇 가지 흔적을 남겼습니다. 

 

다음 날 몸무게를 재보니 2킬로그램이 줄어있었습니다. 최근 십 년 정도는 결코 닿지 못할 것 같던 몸무게였어요. 이래서 연예인들이 단기간 다이어트를 위해 혹독하게 굶는구나 싶었죠. 하지만 도대체 그렇게 굶으며 활동할 에너지는 어디서 만들어내는 걸까요. 굶어서 빠진 몸무게라 먹기 시작하니 1킬로그램은 금방 회복됐지만 며칠간은 줄어든 몸무게가 유지되긴 했습니다. 아마도 지금은 거의 원상복귀가 되었을 거예요. 

 

한 가지 특이할 점은 단식 이후 식욕이 많이 줄었다는 겁니다. 뭔가 먹고 싶은 마음이 많이 없어졌어요. 이전엔 밤늦게까지 깨어있으면 공연한 배고픔에 간간히 야식이나 간식을 먹곤했는데 지금은 크게 '먹고 싶다'는 기분이 들지 않아요. 

 

단식 기간 중에 평생 무쌍(쌍꺼풀 없는 눈)으로 살아온 인생에 난데없는 쌍꺼풀이 생길 뻔한 것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재미있는 일이었습니다. 눈뜰 때마다 꽤 선명하게 잡히는 속 쌍꺼풀이 이대로 두면 그대로 자리 잡을 것 같았죠. 어릴 적엔 쌍꺼풀진 눈이 부러워 일부러 만들어보기도 했는데 막상 쌍꺼풀진 내 얼굴을 보니 별로 좋아 보이지 않더라고요. 뭔가 외모의 업그레이드라기보다는 나이 들어 더해진 주름의 하나 처럼 느껴졌어요. 검색해보니 갑자기 생기는 쌍꺼풀은 피곤과 수분 부족 때문이라기에 수분팩을 눈꺼풀 위에 몇 차례 붙여주고 한동안 눈을 힘주어 크게 뜨지 않으려 노력했어요. 다행히도 노력 덕분인지 무쌍을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몸 상태에 맞지 않는 급작스런 단식은 몸에 많은 부담을 줍니다. 사실 '이유' 같은 건 없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미래가 너무 버거울 때 우리는 그저 오늘 하루를 잘 살고, 내일이 되면 또 오늘인 내일을 잘 사는 거래요. 주어진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합니다. 내가 먼저 포기하지 않습니다. 나를 지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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